검지도 어둡지도 않은

Blank Black

Blank Black, 2020, 2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10분 58초

Support

Support, 2020,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4분 3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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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도 어둡지도 않은»,(위켄드,2020)

당신은 이 흑공에서 나올 수 있을까?


지속적으로 진행된 기상이변과 전염병으로 인해, 지금의 지구는 많은 생태계가 파괴되어 자원부족 사태를 겪고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년은 격변의 전쟁이라 할 만큼 다 분야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어 여기까지 왔다. 2019년 말 시작되었던 호주 산불과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인하여 많은 것이 멈춰지고 인류 생활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경계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인 류 중심의 생활상태는 잠시동안 림보 상태에 머물수 밖에 없었지만, 잠시나마 이산화질소 양도 크게 감소되었고 마치 이 행성이 자정능력을 보이듯 지구 곳곳에 기대하지 않았던 야생동물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공백을 메꾸려 가동된 산업으로 이상 기후는 전보다 더 빠른 주기로 찾아오게 되면서 재배가 가능한 식물 종의 감소와 건기와 우기 밖에 남지 않아 모래바람과 폭우로 지구는 생태가 불가능한 상태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자가 뇌 회로 세팅을 통해 다양한 감정과 지능 또한 계산되어지는 것이 일상화 되면서 데이터 및 기술적 지능과 공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소유욕이 사라졌고, 이전시대의 인류가 그렇게 바래왔던 영원한 삶을 이루게 되었으며,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전의 국경과 정치의 권력을 흐리게 만든 대신 ‘지구생명체 연대’라는 이름으로 느슨한 공동체가 자리를 잡아 많은 것을 결정하고 추진하게 되면서, 현재의 지구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20여년 전의 정치를 되풀이 하듯 이 연대는 해체될 위기를 여러번 겪어왔지만 지구에서의 삶은 더 이상 대안이 없다는 현실에 대부분 동의하고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Habitable Zone)’ 사업에 많은 부분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블랙홀 주변에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의 존재 또한 확실해지면서, 블랙홀의 존재 조차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대안적 우주 에너지로 바뀌게 되었다.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관련 사업과 연구에 대한 정기적인 발표로 인해 인류는 지구의 사고체계를 벗어나 우주적 사고체계로 확장되고 있다.


당신은 아직 인류에게 지구라는 행성의 희망이 있는 시대에 서있지만, 동시에 블랙홀을 대하듯, 까마득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당신에게는 현재가 글리치(시스템의 일시적 오류)가 발생한 게임의 플레이어처럼 탈출하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태와 같이 현재가 멈춰있다고 느끼거나 반복적으로 재생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내가 앞서 말했던 그 과정의 그 어딘가 일지도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설정된 아직 검증전의 가설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라고 쓰인 지옥문을 바라보았던 단테처럼 지금 당신에게 블랙홀은 희망이 없는 공간으로 느껴져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내가 있는 현재는 많은것이 당신이 예상하는 것을 벗어났음을 사실을 다시한번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흑공’은 블랙홀과 같이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당신이 속한 자본주의 사회의 ‘장벽’들, 가상세계 속 ‘탈출 할 수 없는 공간’, 당신에게는 아직 미지의 공간인 ‘블랙홀’ 사이를 오가며 아직 명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흑공을 두고 종종 자신의 비관적 처지를 투영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것이 생태의 변종을 떠나 인류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당신이 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틈을 발견해주었으면 한다. 당신이 알아 챘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보내고 있는 이 세번째 겨울은 특히 끝이 없을것 같이 길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은 ‘흑공’의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을 ‘흑공’의 존재를 완성하는 바로 그 탐험자가 될수 있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이 흑공에서 나올 수 있을까?

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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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어두운』은 조주현 개인전 《검지도 어둡지도 않은》(위켄드, 2020.5.15-6.7) 연계 출판물로 발행되었다. 조주현은 ‘흑공’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작업을 출발한다. ‘흑공’은 일종의 싱크홀처럼 어느 날 갑자기 땅에 생긴 구멍이지만, 싱크홀과 달리 주변의 땅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곳에 들어가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그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사람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마치 웜홀처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러한 SF적 설정은 그대로 소설가 천선란에게 전해진다. 바톤을 이어받은 소설가는 ‘흑공’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SF소설을 창작한다. 소설의 주인공 은지는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을 병행하며 늘 돈에 허덕이는 대학생이다. 그러던 어느날, 철원 비무장지대에서 운동장만 한 크기의 ‘구멍’이 발생하고, 아무 상관 없던 은지의 삶도 바뀌게 된다.

기획·편집: 권정현, 조주현

글: 천선란(소설), 권정현(비평)

디자인: 하형원

발행처: YPC PRESS

발행일: 2020. 5. 15.

쪽수: 128쪽

판형: 100*176(mm)

ISBN: 979-11-970327-0-7(02600)

가격: 10,000K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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